📑 목차
욕실과 주방에 서 있다가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을 것 같다. “도대체 이 공병들은 왜 이렇게 쌓일까?” 나도 그랬다. 샴푸 다 쓰고 남은 플라스틱 통, 각종 주방세제 통, 섬유유연제 병, 욕실 세정제 스프레이 통까지. 다 비어 있는데, 다 멀쩡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공병들을 한 번 더 쓰는 상상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저 ‘재활용 봉투에 넣어야지’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동네에 샴푸·세제 리필샵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번엔 그냥 버리지 말고, 저 공병들을 데리고 나가볼까?” 그렇게 시작된 게 바로 집 안 공병·리필 스테이션 이용해본 경험기, 나의 리필 실험 프로젝트였다.
이 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다음과 같다.
- 집 안에 쌓여 있던 공병을 실제로 어떻게 골라서 세척하고, 리필 스테이션에서 다시 쓰는지 구체적인 과정을 알 수 있다.
- 샴푸 리필, 세제 리필을 처음 시도할 때 필요한 준비물과, 리필샵에서 용기 무게 재는 법·요금 체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일회용 플라스틱 통을 계속 사는 대신 공병을 활용했을 때, 플라스틱 쓰레기 양, 집 안 분위기, 소비 습관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간접 경험할 수 있다.
- “리필샵, 괜히 번거로울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벗어나, 나에게 맞는 속도로 제로웨이스트와 자원순환을 실천하는 현실적인 관점을 얻을 수 있다.
이제부터는 내가 실제로 집 안 공병을 싹 모아서, 동네 샴푸·세제 리필샵을 몇 번 들락거리며 겪었던 시행착오, 리필 후 생활의 변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느낀 솔직한 생각까지 차근차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1. 버리기 전에 한 번 더 보기 – 집 안 공병들을 모아보니
리필샵에 가겠다고 마음먹은 건 좋았는데, 막상 집을 둘러보니 공병이 생각보다 많았다. 욕실 선반 위에는 샴푸·컨디셔너 공병, 바닥에는 바디워시 용기, 세면대 옆에는 핸드워시 통. 주방 싱크대 밑에는 주방세제와 베이킹소다 스프레이 병, 다 쓴 세제 리필 통이 접힌 채로 들어 있었다. 이 모든 게 그동안 내가 만들어낸 플라스틱 쓰레기의 흔적이었다.
나는 일단 ‘다시 써도 괜찮겠다 싶은 공병’만 추려냈다.
- 입구가 넓어서 샴푸 리필하기 좋은 펌프형 병
- 세척이 쉬운, 매끈한 재질의 주방세제 병
- 라벨이 깨끗이 떨어질 것 같은 투명 용기
그러고 나니 “버릴 것” 같던 공병들 사이에서 ‘두 번째 생명’을 얻어도 좋을 것 같은 병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은 물론, 묵직한 유리 공병들도 새삼 아까워 보였다.
공병을 모으는 동안 나는 자연스럽게 내 소비 습관을 떠올렸다.
“나는 샴푸가 다 떨어질 때마다 새 통을 또 사왔구나.
리필 스테이션이 있다는 건 알았으면서도,
그냥 귀찮다는 이유로 늘 새로운 플라스틱 통을 집 안으로 들여왔구나.”
공병을 모아 바닥에 일렬로 세워놓는 순간, 뭔가 작은 전시회 같은 모습이 나왔다. 이건 어찌 보면, 내가 지난 1~2년 동안 써온 제품들의 타임라인이기도 했다.
2. 공병 세척이라는 첫 관문 – 깨끗한 병에서 시작하는 리필
리필샵을 쓰려면, 공병을 깨끗이 세척하는 과정이 필수였다. 남아 있는 샴푸 찌꺼기나 세제가 섞인 상태로 리필을 받으면, 내용물이 변질되거나 향이 이상하게 섞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선 욕실에서 샴푸 공병 펌프를 모두 분해했다.
- 펌프 부분은 뜨거운 물에 한 번 담가두고, 깨끗한 물로 여러 번 헹구기
- 병 안쪽은 미지근한 물과 주방세제를 조금 넣고 흔들어 씻어내기
- 마지막에는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충분히 헹군 뒤, 거꾸로 세워 건조
주방세제 공병도 마찬가지였다. 사용하던 세제 리필 액이 약간 남아 있었는데, 이 부분까지 꼼꼼히 헹궈 냈다. 생각보다 오래된 세제 찌꺼기 냄새가 올라왔고, “아, 내가 늘 새 제품만 들여오면서 병 관리는 제대로 안 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세척 후 공병을 창가에 줄 세워 놓고 보니 묘하게 뿌듯했다.
“이제 이 병들은 쓰레기가 아니라, 리필 스테이션에서 쓸 수 있는 자원이구나.”
공병이 완전히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어떤 병에 샴푸 리필을 담을지, 어떤 병에 세제 리필을 담을지 라벨을 상상하며 적어봤다. 이 과정부터 이미 작은 제로웨이스트 놀이 같았다.
3. 리필샵 첫 방문 – 용기 무게 재고, 샴푸·세제 리필 받기
드디어 공병들을 강아지 산책 가방 대신 에코백에 넣고, 동네 리필샵으로 향했다. 가게 문을 열자, 세제와 샴푸, 주방세제, 섬유유연제, 주방 비누, 고체 비누 등이 통째로 진열된 리필 스테이션이 눈에 들어왔다. 각 통 옆에는 100g, 500g 기준 가격이 적혀 있었고, “공병을 가져오신 분은 직원에게 먼저 보여 주세요”라는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나는 직원에게 다가가 공병을 꺼내며 말했다.
“이 공병들에 샴푸 리필이랑 세제 리필을 좀 받아보고 싶어요. 처음이라 어떻게 하면 될지 잘 모르겠어요.”
직원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 먼저 빈 공병 무게(용기 무게)를 저울에 올려서 ‘용기무게’로 기록
- 어떤 제품을 담을지 미리 결정
- 리필 후 무게를 다시 재서, 순수 내용물 무게만큼만 금액 계산
나는 먼저 큰 펌프형 공병에 샴푸를 담아 보기로 했다. 안내된 샴푸 향을 맡아본 뒤, 마음에 드는 걸 골랐다. 직원이 레버를 내려 샴푸를 조금씩 채워 넣는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재미있었다. 그동안 공장에서 자동으로 채워졌을 과정을 내 눈앞에서, 내 공병에 맞춰 다시 하는 느낌이었다.
다음은 세제 리필 차례였다. 주방세제와 빨래세제를 각각 다른 공병에 담았다. 향을 고를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 무엇보다 새 플라스틱 통이 하나도 늘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좋았다.
계산대에 서서 무게 기반으로 결제하는 순간, 살짝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이 정도 양이면, 마트에서 새 통 사는 것보다 가격이 아주 크게 싸진 않네.
그래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필요한 양만 담아오는 걸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데?”
리스틀히 말하면 ‘완전한 가격 메리트’보다, 자원순환에 동참하고 있다는 느낌이 더 컸다.
4.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 – 공병 크기, 라벨, 내용물 헷갈리기
모든 게 순조롭게만 흘러간 건 아니었다. 리필샵을 두세 번 다니다 보니 열심히 실수도 했다.
첫 번째 실수는 공병 크기였다. 욕실 샴푸 공병이 너무 커서, 한 번에 과감하게 많이 담아버렸다. 집에 와서 보니, “아… 이걸 언제 다 쓰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리필이라고 무조건 많이 담을 필요는 없는데, 괜히 한 번에 넉넉히 채우고 싶은 마음이 앞섰던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한 번 써보고 괜찮으면 다음에 더 채우자”라는 기준을 세웠다.
두 번째 실수는 라벨 관리였다.
처음에는 “병 모양만 봐도 뭐가 뭔지 알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욕실과 싱크대에 놓고 보니, 누가 봐도 헷갈렸다. 특히 샴푸와 컨디셔너 공병이 비슷한 모양이라, 아침에 잠이 덜 깬 상태에서는 헷갈리기 딱 좋았다.
그래서 나는 간단한 종이 라벨과 유성 펜을 꺼내 들었다.
- 앞면에는 제품명(샴푸, 린스, 주방세제, 세탁세제)
- 옆면에는 리필 날짜와 리필샵 이름
이렇게 적어 붙이니, 공병들이 훨씬 신뢰감 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중에 리필샵에 갈 때도 “이 샴푸 괜찮았지, 이건 좀 별로였지”를 메모 덕분에 기억하기 쉬웠다.
이런 작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는 리필 스테이션을 이용하는 일이 ‘한 번 다녀오고 끝’이 아니라, 집 안 루틴과 같이 돌아가야 지속 가능하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5. 한 달쯤 지나 보니 – 플라스틱 쓰레기와 집 안 풍경이 달라졌다
샴푸와 세제를 리필샵에서 채워 쓰기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가장 먼저 달라진 건 분리수거 날이었다. 예전에는 재활용 봉투에 늘 플라스틱 샴푸 통, 세제 통이 한두 개씩 있었다. “이번 달에도 또 나왔네”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버렸었다.
그런데 이번 달엔 그런 통이 거의 없었다. 분리수거 봉투에는 물병이나 간식 포장이 조금 있을 뿐, 큼직한 세제 통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욕실 선반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공병 몇 개가 서 있었다. 내용물이 줄면 나는 리필 스테이션을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채워 쓰면 됐다.
집 안 분위기도 달라졌다.
- 브랜드·색깔 제각각이던 샴푸·세제 통 대신, 내가 고른 공병들이 욕실과 주방을 채웠다.
- 같은 모양의 펌프형 공병에 맞춰 샴푸 리필과 린스를 담아 두니, 욕실이 훨씬 정돈된 느낌이었다.
- 싱크대 밑에는 “다 쓴 통”이 아니라 “다음에 리필할 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플라스틱 통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한 통을 여러 번 돌려 쓰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6. 리필샵을 다니며 생긴 생각 – 소비가 조금 느려지는 기분
리필샵을 몇 번 들르다 보니, 흥미로운 변화가 하나 더 생겼다. 나는 샴푸·세제를 고를 때 ‘광고’보다 내 몸과 집과 동네를 먼저 떠올리게 됐다.
예전에는 마트에서 “1+1” 스티커 붙은 샴푸를 보면, 성분이나 용량을 깊게 따지지 않고 덜컥 집어 들었다.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겠지”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샴푸 리필을 하기 시작하고 나서는, 사용감이 마음에 안 들면 다시 그 샴푸를 또 리필해 올 이유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제품을 더 꼼꼼히 느끼게 됐다.
또 하나 재밌었던 점은, 세제 리필할 때였다. 리필샵에서는 작은 용량도 부담 없이 담을 수 있으니, 새로운 제품을 시험해 볼 때도 플라스틱 통을 새로 들일 필요가 없었다. “이 세탁세제 향은 조금 세네, 다음엔 다른 걸로 바꿔볼까?” 하는 식으로, 나에게 맞는 제품을 천천히 찾아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소비 속도가 느려지는 느낌이었다. 그냥 ‘싼 거, 많이, 빨리’가 아니라,
“지금 집에 있는 공병으로 얼마나 쓰고 있는지,
언제쯤 다시 리필 스테이션에 가면 좋을지,
이번에는 어떤 제품을 담아 올지”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7. 처음 리필샵을 가보려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현실적인 팁
혹시 나처럼 집 안 공병을 활용해서 샴푸·세제 리필샵이나 리필 스테이션을 이용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내가 직접 겪으면서 느낀 팁을 몇 가지 정리해본다.
- 공병은 처음부터 많이 들고 가지 않아도 된다
한 번에 여러 개 들고 가면 무겁고, 정신도 없다. 처음에는 샴푸 한 병, 주방세제 한 병 정도만 들고 가보는 걸 추천한다. - 공병 세척·건조는 필수
병 안쪽에 이전 내용물 냄새가 남아 있으면 향이 섞이고, 변질될 위험이 있다. 특히 샴푸 리필할 공병은 거품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뜨거운 물로 충분히 헹궈주는 게 좋다. - 라벨을 꼭 붙이기
욕실에서 샴푸와 컨디셔너, 주방에서 세제와 세정제를 헷갈리지 않으려면, 공병에 간단히 이름과 날짜를 적어두면 생활이 훨씬 편하다. 작은 종이 라벨이나 유성펜이면 충분하다. - 가격은 ‘리터당’이 아니라 ‘총 플라스틱 양’까지 같이 생각하기
어떤 제품은 마트 세일 가격보다 조금 비싸 보일 수 있다. 그럴 때는 “이번에 새 플라스틱 통이 늘지 않는다”는 것까지 합쳐서 판단해 보는 게 좋다. 가격만 보면 손해 같아도, 플라스틱 쓰레기와 집 안 정리, 나의 만족감까지 합치면 생각보다 괜찮은 선택일 수 있다. - 리필샵 방문을 ‘주말 산책 코스’처럼 묶기
일부러 이것만 하러 가면 귀찮게 느껴질 수 있다. 근처 카페, 시장, 공원 나들이와 함께 코스를 짜면 훨씬 가볍게 갈 수 있다. 나에게는 “주말에 한 번 리필 스테이션 들르기”가 작은 외출 루틴처럼 자리 잡았다.
8. 공병을 버리지 않고 데려나가는 삶에 대한 내 의견
집 안 공병·리필 스테이션 이용해본 경험을 몇 달간 이어오면서, 나는 공병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샴푸·세제 다 쓰고 남은 통을 보면 “아, 또 버려야 할 게 하나 생겼네”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지금은 “이 병은 다음에 어떤 향으로 채워올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내 개인적인 의견은 이렇다.
리필샵을 이용하고 공병을 다시 쓰는 일은,
환경을 위한 행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위한 정리이기도 하다.
욕실과 주방의 플라스틱 통이 줄어드니 집이 덜 어지러워졌고,
분리수거 봉투 안에 들어가는 큼직한 쓰레기가 줄어드니 마음도 덜 무거워졌다.
무엇보다 “나는 할 수 있는 만큼은 덜 버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감각이 생겼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공병 몇 개 더 쓴다고 세상이 얼마나 달라지겠어?”
나는 이제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맞아, 세상이 당장 바뀌진 않겠지.
그래도 내 쓰레기통, 내 욕실 선반, 내 소비 습관은 분명히 달라졌어.
그리고 그 변화를 만든 건 거창한 운동이 아니라,
‘오늘은 새 통 대신 내 공병을 들고 리필샵에 가보자’는
아주 작은 선택 하나였어.”
그래서 다음번에 샴푸가 다 떨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나는 또 욕실에서 조용히 공병을 씻어 창가에 세워둘 것이다.
버릴 준비가 아니라,
다시 채울 준비를 하면서.
그게 지금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작고 현실적인 제로웨이스트·자원순환 루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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