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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전자레인지를 너무 당연하게 쓴다. 나도 그랬다. 출근 전 잠깐, 남은 밥을 데울 때, 냉동 만두를 해동할 때, 차가운 반찬을 데울 때까지 손이 먼저 전자레인지 버튼으로 가곤 했다. 전자레인지는 분명 편리한 도구였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 후 습관처럼 전자레인지 ‘시작’ 버튼을 누르고 서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음식을 준비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버튼을 누르고 있을 뿐일까?”
그 순간부터 전자레인지와의 거리두기가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다. 에너지 사용량, 전자파 걱정, 환경 문제 같은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음식과의 관계가 너무 ‘급하게’ 흘러간다는 느낌이 싫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실험을 하나 시작했다. 이름하여 “전자레인지 사용량 줄이고 자연해동으로 살기 한 달 프로젝트”였다. 이 글은 그 한 달 동안 내가 실제로 겪은 불편함과 변화, 그리고 그 이후 내 삶에 남은 루틴에 대한 솔직한 기록이다.

1. 전자레인지 끊기가 두려웠던 이유부터 인정하기
나는 처음부터 “전자레인지 아예 안 쓸 거야”라고 선언할 용기가 없었다. 직장 다니면서, 아이 밥 챙기면서, 바쁘게 사는 사람이 전자레인지를 완전히 끊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상상만 해도 버거웠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나는 편리함에 많이 익숙해져 있다. 이걸 하루아침에 끊기는 어렵다. 대신 ‘최대한 줄여보기’부터 시작하자.”
그래서 세 가지 기준을 정했다.
- 냉동식품 해동은 전자레인지 대신 자연해동으로 전환
- 밥·국 데우기는 가능한 한 가스레인지나 중탕으로 해결
- 정말 시간이 없거나 아이가 배고파 울 때 같은 예외 상황에는 사용 가능
‘완전 금지’가 아니라 ‘최소 사용’이라는 기준을 세우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방향이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말해줬다.
2. 첫 주 – 냉동실 앞에서 멍하니 서 있던 나
전자레인지 사용을 줄이기로 마음먹고 첫날 아침, 나는 바로 벽에 부딪혔다.
전날 밤에 빵을 냉동해두고 “내일 아침에 전자레인지에 30초 돌려 먹어야지”라고 생각해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때 깨달았다.
“이 실험은 습관이 아니라 ‘준비’의 문제구나.”
자연해동을 하려면 시간과 계획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첫 주에 이렇게 실천했다.
- 냉동 밥: 밤에 자기 전, 다음 날 먹을 양만큼 미리 냉장실로 옮겨두기
- 냉동 빵: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상온에 꺼내놓고 씻는 동안 자연해동
- 냉동 고기: 저녁 식단이 정해지는 즉시, 사용할 고기는 냉장실로 이동
처음 며칠은 자꾸 잊었다.
퇴근 후 냉동실을 열고서야 “아, 해동을 안 해놨지…”라는 걸 깨닫곤 했다. 그때마다 전자레인지 버튼을 향해 가는 손을 겨우 돌려 세우고, 찬물에 담가 급히 해동을 하거나, 메뉴를 바꿔버리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시기가 가장 스트레스가 컸다.
하지만 재미있는 변화도 있었다.
저녁 메뉴를 미리 생각하게 되니, 충동적으로 배달을 시키는 일이 줄어들었다.
“어차피 고기를 냉장고로 옮겨놨으니, 오늘은 이걸로 뭘 해 먹어야겠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집밥 빈도가 늘어났다.
3. 둘째 주 – 슬로우 해동에 몸이 익기 시작하다
둘째 주부터는 자연해동 자체가 조금씩 익숙해졌다.
찬물 해동과 냉장 해동을 병행하면서 음식의 상태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 냉장 해동: 전날 밤 혹은 최소 4~6시간 전에 옮겨놓기
- 찬물 해동: 비닐이나 밀폐용기에 넣고, 찬물을 계속 유지하며 30분~1시간 정도 해동
특히 고기와 생선은 전자레인지보다 냉장·찬물 해동이 훨씬 결과가 좋았다.
예전에는 전자레인지 해동 후 가장자리는 익어 있고, 가운데는 얼어 있는 상태라 다시 돌리고, 그러다 보면 식감이 퍽퍽해지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자연해동을 하니 육즙이 덜 빠지고, 고기가 훨씬 부드럽게 익었다.
이때 나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전자레인지가 시간을 단축해주는 대신, 음식의 ‘결’도 같이 깎아 버렸구나.”
물론 시간 관리 차원에서는 불편함이 있었다.
주말에는 괜찮았지만, 평일에는 퇴근 후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서 나는 자연해동에 맞춰 나만의 저녁 루틴을 다시 짰다.
- 퇴근 후 집에 오면 제일 먼저 냉장고를 열어 상태 확인
- 그날 사용할 식재료를 꺼내 상온에 잠깐 두고,
- 그 사이 아이 숙제 봐주기, 빨래 개기, 간단한 집안일 처리
이렇게 동선을 바꿔보니, 전자레인지는 빠졌지만 전체적으로 오히려 하루가 더 정돈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4. 세 번째 주 – 데우는 방식부터 다시 배우다
해동은 어느 정도 루틴이 잡혔는데, 여전히 남은 숙제가 있었다.
바로 “이미 만들어둔 반찬·밥·국을 어떻게 데울 것인가”였다.
예전에는 남은 밥을 그릇째로 전자레인지에 넣고 ‘1분 30초’를 누르는 게 전부였다.
세 번째 주부터 나는 이 습관을 바꾸기 위해 이렇게 시도했다.
- 밥:
- 냄비에 약간의 물과 함께 밥을 넣고 약불로 데우기
- 또는 찜기나 솥 위에 올려 간이 찜처럼 데우기
- 국/찌개:
- 냄비에 옮겨 담아 아예 한 번 더 팔팔 끓이기
- 반찬(볶음류, 구이류):
- 프라이팬에 약간의 물이나 기름을 둘러 데우면서 살짝 다시 볶기
처음엔 솔직히 귀찮았다.
그런데 며칠 계속 해보니 입이 먼저 알아차렸다.
전자레인지에 데운 밥보다 냄비에 다시 데운 밥이 훨씬 촉촉하고, 갓 지은 밥에 가까운 맛이 났다.
국과 찌개는 한 번 더 끓이면서 양념이 더 잘 배어 맛이 깊어졌다.
나는 이때부터 ‘데우기’가 단순히 온도만 올리는 작업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전자레인지는 온도를 올리고, 냄비와 불은 맛을 다시 살려준다.”
이 감각이 몸에 남으면서, 자연스럽게 전자레인지 쪽으로 가던 발길이 줄어갔다.
5. 전자레인지 사용을 줄이면서 생긴 예상 밖의 효과들
한 달 동안 전자레인지 사용량을 줄이며 살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변화들이 따라왔다.
1) 전기 사용량과 소음 감소
전자레인지는 사용 시간은 짧지만 순간 전력 소모량이 꽤 크다.한 달이 지나고 전기요금을 확인해보니 크게 극적인 차이는 아니었지만, 전체 사용량이 눈에 띄게 완만해진 느낌이 있었다. 무엇보다 조용했다.
“띵-” 소리와 함께 돌아가던 모터 소음이 줄자, 주방이 조금 더 차분해졌다.
2) 주방 체류 시간이 ‘투자’처럼 느껴지기 시작
예전에는 전자레인지에 돌려놓고 그 앞에서 멍하니 서 있던 시간이 많았다.
이제는 그 시간에 설거지를 하거나, 다음 날 도시락을 미리 준비하거나, 간단히 테이블을 닦는 등 다른 생산적인 행동으로 바뀌었다.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의미한 대기시간이 아니라, 하루를 정돈하는 시간으로 변했다.
3) 간식과 인스턴트 식품 소비 감소
전자레인지를 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자레인지 전용 냉동 간식, 인스턴트 식품 소비도 줄었다.
“돌리면 되는 음식”을 덜 사게 되면서, 집에 과자·냉동 간식이 쌓이는 일도 줄었다.
이 변화는 환경뿐 아니라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았다.
6. 불편했던 점과 솔직한 실패 지점들
물론 좋은 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이 실험에는 솔직히 말해 “아, 이럴 땐 그냥 전자레인지가 답이다” 싶은 순간도 많았다.
- 갑자기 늦게 들어왔는데 이미 배달도 애매하고, 냉장고에 있는 밥을 빨리 먹어야 할 때
- 아이가 “갑자기 치즈 토스트 먹고 싶어!”라고 떼쓰는 밤
- 도시락을 싸야 하는데 해동을 깜빡해버린 아침
이럴 땐 나도 결국 전자레인지 문을 열었다. 버튼을 누르면서 살짝의 패배감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중요한 건 전체 사용량을 줄이는 거지, 오늘 한 번 썼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않으니, 이 프로젝트를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는 것이 오히려 지속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7. 한 달 후 돌아본 숫자와 체감 변화
한 달이 지난 뒤 나는 전자레인지 사용 기록을 대략적으로 정리해봤다.
처음에는 거의 하루에 3~5번 정도 버튼을 눌렀다면, 실험 후에는 3~4일에 한 번 정도로 줄어 있었다. 사용 자체가 ‘예외 상황’으로 바뀐 셈이다.
체감상 가장 컸던 변화는 이 세 가지였다.
- 음식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졌다.
해동부터 데우기까지 시간을 들이다 보니, 음식을 허겁지겁 먹지 않게 되었다.
밥 한 끼의 무게를 더 느끼게 되었다. - 식사 시간이 느려졌다.
급하게 돌려서 먹던 패턴에서, 자연스럽게 준비-조리-식사 흐름이 생겼다.
식사 시간이 짧지만 깊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 환경과 에너지에 대한 감각이 생겼다.
버튼 한 번 누르는 대신 불을 켜고 냄비를 올리는 행위 자체가,
“지금 이 에너지를 나는 어떻게 쓰고 있나?”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었다.
8. 지금 내 전자레인지와의 거리, 그리고 개인적인 의견
지금 나는 전자레인지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여전히 아주 가끔, 정말 시간이 부족한 날에는 전자레인지 버튼을 누른다.
하지만 이제 전자레인지는 ‘항상 쓰는 기본 도구’에서 ‘특수 상황용 도구’로 역할이 바뀌었다.
이 한 달 실험을 통해 내가 내린 개인적인 결론은 이렇다.
- 전자레인지는 무조건 나쁜 존재가 아니다.
- 다만 너무 편리하기 때문에, 우리가 음식과 시간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빼앗기기 쉽다.
- 자연해동과 불을 활용한 조리는 조금 더 번거롭지만, 그만큼 맛과 마음에 남는 여운이 크다.
- 환경을 위해서도, 건강을 위해서도, 생활 리듬을 위해서도 전자레인지를 ‘조금 덜 쓰는 삶’은 분명 의미가 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 루틴을 유지할 생각이다.
전자레인지를 완전히 끊겠다기보다는,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쓰는 선택지”로 두고 싶다.
환경을 생각하는 일은 늘 거창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건 그저 오늘, 밥 한 그릇을 어떻게 데울 것인지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냉장고 문을 열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걸 당장 돌려 먹을까, 조금만 더 기다려서 자연해동을 해볼까?”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내 하루의 속도가 살짝 느려지고,
음식과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고 느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느려진 속도가 꽤 마음에 든다.
편리함을 조금 내려놓는 대신, 맛과 여유, 그리고 환경에 대한 작은 배려를 얻었기 때문이다.